써놨던걸 올리는지라 연속 업로드.
여전히 할 말은 없군요. 음.
블로그에도 올리게 될 거라곤 솔직히 생각은 못했지만 -_-);
more..
마법학원의 교실은 대학의 강의실처럼 보였다. 강의실이 석조건물로 바뀐 정도라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강의를 하는 교수가 제일 아래의 단에 위치하고, 계단처럼 자리가 이어지고 있다. 루이즈와 제로가 교실에 들어오자 학생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웃는다. 또 이런 반응인가, 하고 조금 한숨을 쉬었다. 방금 전의 키르케도 있다. 주위는 남자들 뿐. 과연, 남자에게 한방이라는 건 사실이었나. 주위를 둘러싼 남자들로부터 거의 여왕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다.
모두들 가지각색의 사역마를 데리고 있다. 키르케의 샐러맨더는 의자 아래에 잠들어 있고, 어깨에 부엉이를 올리고 있는 학생도 있다. 창에는 거대한 뱀이 안쪽을 살피고 있었지만, 한 남학생이 피리를 불자 뱀은 창 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까마귀나 고양이도 있었지만, 역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샐러맨더와 같은 환수다. 말은 쉽게 했지만 이 세계의 환수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없다. 환수를 사역마로 하는 메이지가 루이즈를 공격하면 내 반격이 환수에게 유효할 것인가는 알 수 없다. 다리가 여섯 개쯤 달린 거대한 뱀-아마 바질리스크라 불렸던-도 있다. 거대한 눈알이 둥둥 떠있기도 하고, 인간의 하반신이 문어와 같이 8개의 다리를 하고 있기도 하다. 루이즈가 자리에 착석하자, 제로는 창가로 멀어졌다. 학생이 아닌 이상 정식으로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들을 수는 없겠지만, 어차피 서번트니 청강 정도는 용서해줄 것이다.
문이 열리고 교수로 보이는 여성이 들어왔다. 중년 여성으로, 보라색 로브를 몸에 두르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포동포동하여 푸근한 인상이다. 그녀는 교실을 둘러보더니,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 모두들 봄의 사역마 소환은 대성공인 듯 싶군요. 이 슈브루즈, 이렇게 봄의 신학기에 여러 종류의 사역마를 보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루이즈가 고개를 숙였다.
“어라, 미스 발리에르. 당신의 사역마는 어디에…?”
루이즈가 묵묵히, 하지만 부들부들 떨며 손가락을 들어 제로를 가리켰다. 다시 시선이 집중된다.
“어라라…꽤나 특이한 사역마를 소환했군요.”
슈브루즈가 제로를 보며 능청스레 말했다. 교실 안이 웃음으로 뒤덮이고, 루이즈의 얼굴이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제로의 루이즈! 소환이 안 됐다고 근처에서 걸어가던 평민을 데려오면 안 되지!”
루이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목이 집중된다. 고개를 푹 숙이고 부들부들 떨고있다. 심호흡을 하더니 뒤로 돌아 고개를 들며 귀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냐! 제대로 소환했는데 저녀석이 온 것 뿐이라구!”
“거짓말 하지 말라구! 서몬 서번트가 실패한 거 아냐?”
크하하핫, 하고 교실 안의 학생들이 웃어제꼈다. 루이즈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얼굴 전체가 붉어졌다.
“미세스 슈브루즈! 감기쟁이 마리콜느가 저를 모욕했습니다!”
주먹을 움켜쥐고 루이즈가 책상을 내리쳤다. 주먹이 붉게 되었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꽤 아플텐데, 그 정도로 화났군, 하고 놀란다.
“감기쟁이라니?! 난 바람 위의 마리콜느야!”
“네 걸걸한 목소리는 감기 걸린 것 같잖아!”
마리콜느라 불린 남학생이 일어서 루이즈를 노려보았다. 슈브루즈 선생이 손에 든 작은 지팡이를 흔들자, 두 사람 모두 실이 끊긴 마리오네트처럼 털썩 하고 자리에 주저 앉았다.
“미스 발리에르, 미스터 마리콜느, 보기 흉한 말싸음은 그만 두세요.”
루이즈가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좀 전까지 보였던 건방진 태도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이렇게 됐을땐 꼭 ‘그녀’ 같다.
“친구를 제로라던가 감기라던가로 놀려서는 안 됩니다. 두 사람 다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의 자제들이니까요.”
“미세스 슈브루즈. 저의 감기야 그렇다 쳐도 루이즈의 제로는 사실인데요.”
마리콜느가 항변하자 교실 여기저기에서 킥킥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슈브루즈가 표정을 굳히고는 교실을 둘러보았다. 곧 손을 들어 지팡이를 흔들었고, 그와 동시에 몇몇 학생들의 입에 붉은 점토가 들러붙었다.
“당신들은 이번 수업 동안 그대로 있으세요.”
킥킥대던 웃음이 사라졌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지요.”
슈브루즈는 몇번 헛기침을 하더니 지팡이를 휘둘렀다. 책상 위에 돌멩이가 몇 개 나타났다.
“저의 아호는 ‘적토’, 적토의 슈브루즈입니다. 흙 계열의 마법을 1년간 강의할겁니다. 미스터 마리콜느, 마법의 4대 계열은 알고 계신가요?”
슈브루즈가 묻자 마리콜느는 재빨리 대답했다.
“아, 네, 미세스 슈브루즈. 화, 수, 토, 풍의 4속성입니다.”
토속성을 제외하면 엘리멘탈 칩과 완전히 같은 속성이다. 아마 토속성은 중력제어나 광물의 가공에 관여하는 마법이겠지. 슈브루즈가 만족한 얼굴로 끄덕였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순수계열마법인 ‘허무’를 더하여 전부 5계열의 마법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겁니다. 그 5개 계열 중 흙의 계열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딱히 제가 흙의 계열의 마법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기서 헛험, 하고 헛기침을 몇 번 더한다.
“흙의 계열은 미네랄의 조직을 관장하는 계열입니다. 흙의 계열이 없다면 중요 금속을 연금하거나, 가공하는 것은 불가능해지겠죠. 여러분의 생활에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흙의 계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역시나였다. 마법기술이 과학기술을 대신하고 있다. 허나 마법기술이 너무 발전하고 있어 과학적인 응용에 대한 생각은 잘 하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그렇다곤 해도, 루이즈가 가진 귀족으로서의 자부심이 이유없는 것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연금’마법을 테스트하도록 하겠어요. 흙 계열의 기본 마법이고, 1학년 때 배웠겠습니다만, 기본이란 중요하니까요. 복습하도록 하죠.”
슈브루즈가 지팡이를 휘둘러 돌멩이를 가리키며 룬을 영창했다. 돌멩이에서 빛이 나며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빛이 사라지자, 그것은 반짝이는 금속이 되어 있었다.
“그, 그것은 금인가요? 미세스 슈브루즈?”
“아뇨, 단순한 놋쇠입니다. 돌멩이에서 단숨에 금을 연금할 수 있는 것은 ‘스퀘어’급의 메이지 뿐입니다. 저는 몇 번의 공정을 더 거쳐야 가능하지요. 저야 그저…”
엇험, 하고 거드름피우는 듯한 헛기침을 하고는.
“‘트라이앵글’ 급의 메이지니까요.”
하고 말했다. 루이즈에게 들은 지식은 너무 단편적인 것이라 알 수 없는 용어가 많다. 학교니까 도서관 정도는 있겠지. 책을 읽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자아, 그럼 여러분의 실력을 보지요. 우선 미스 발리에르?”
“어…제가?”
“그래요. 여기 있는 돌멩이를 원하는 금속으로 연금하세요.”
루이즈는 일어나지 않고 우물쭈물했다. 역시나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일까.
“미스 발리에르, 어서 일어나세요.”
슈브루즈 선생이 루이즈를 재촉했다. 루이즈는 여전히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번의 일로 봐서…아마, 맞을 것이다.
“선생님.”
답답했는지 키르케가 손을 들었다.
“무슨 일이죠?”
“루이즈에게 시키는 것은 그만두는 게 좋을거라 생각하는데요….”
“어째서죠?”
“위험하니까요.”
키르케는 어쨰서 그런 것을 묻냐는 듯이 말했다. 교실 내의 모두가 끄덕였다.
“위험? 어째서죠?”
“미세스 슈브루즈, 루이즈를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시죠?”
“네. 하지만 그녀는 노력가라고 들었어요. 거의 전과목 필기에서 우수한 성적이더군요. 실기는 조금…부진한 성적이긴 했지만.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루이즈가 일어섰다. 키르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교실의 모두도 마찬가지다. 제로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 뒤의 일은 어느정도 예상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실패’일까? 그녀는 제로를 불러냈다. 보통의 마법을 훨씬 뛰어넘어, 이세계의 존재를 불러온 소환자가, 실패뿐이라서야 설명이 안 된다.
“루이즈, 그만 둬.”
“하겠어.”
루이즈는 긴장한 얼굴로 교실 앞으로 걸어갔다. 지팡이를 들어올리고는 진지한 얼굴로 영창을 시작했다. 입술을 가볍게 다문 루이즈의 얼굴은 꽤나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창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침 햇살에 루이즈의 복숭아빛 블론드가 빛났다.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앞자리의 학생들은 책상 밑에 숨어있었다. 꽤나 인기가 있을 법한 얼굴을 하고도 ‘제로’라고 불리우며 바보취급 당하고 있다. 결론은 하나 뿐인가….
루이즈가 영창을 끝냄과 동시에, 책상이 폭발했다.
“역시인가.”
후폭풍에 휘날린 루이즈와 슈브루즈 선생이 칠판으로 날려가 부딪혔다. 비명소리가 울리고 사역마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키르케의 샐러맨더가 불꽃을 내뿜고, 만티코어가 창문을 깨부수고 날아갔다. 거대한 뱀이 누군가의 까마귀를 집어 삼켰다.
교실이 아비규환에 가까워진다. 키르케가 루이즈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래서 말했잖아! 저 녀석을 시키면 안 된다고!”
“정말, 제로의 녀석은 퇴학시키라구요!”
“나의 럭키! 럭키! 뱀에게 먹히다니!”
역시 ‘제로’라는 별칭은 거기서 온 것이었나. 이래서야 내 이름에 대한 반응도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군, 하고 제로는 수긍했다. 하지만 수긍해서는 안 된다. 시끄러움이 어느정도 가라앉자 제로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무슨 일이죠? 미스 발리에르의 사역마씨.”
슈브루즈가 콜록콜록이며 대답했다. 사역마라거나 평민이라거나 하여 무시하는 모양새는 아니다. 그럴 겨를이 없는 거겠지.
“확실히 내 주인의 마법은 결과적으로 폭발했지만, 본래 흙속성의 마법이 실패하면 폭발하는 건가?”
대답은 없다.
“나는 에네르겐…아니, 마력을 읽을 수 있지만, 그녀의 영창은 제대로 마력을 집약시켰고, 방출 역시 정확했다. 속성을 가지지 않고 있었을 뿐, 순수한 마력량으로서는 훌륭한 병기로 보이는군.”
그렇다. 루이즈가 영창을 끝낸 순간 루이즈의 지팡이 끝에는 엄청난 양의 에네르겐이 집중되어 있었다. ‘오메가’가 했던 공격, 그것에 가까운 양이.
제로의 발언에 교실 내가 술렁였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루이즈의 마법이 어째서 ‘폭발’을 가져오는지. 그저 실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실패’였을까? 이런저런 얘기로 시끌벅적한 교실에,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콜베르는 트리스테인 마법학원에서 일한지 20년이 된 중견 교사다. 그의 아호는 ‘염사’. 불의 계열이 특기이다. 그는 요전의 ‘봄의 사역마 소환’ 중에 루이즈가 불러낸 평민 소년이 신경 쓰였다. 정확하게는 그 소년의 오른손에 나타난 룬이 그럤다. 매우 특이한 룬이었다.
트리스테인 마법학원의 도서관은 식당이 있는 본성의 중심에 있다. 책장은 놀라울 정도로 커서 대충 30미터 정도의 높이이다. 그 정도의 책장들이 일렬로 늘어져 있는 모습이 또 장관인데, 시조 브리밀이 하르케니아에 신천지를 구축한 이래의 역사가 모여 있는 곳이니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다.
그가 있는 곳은 도서관의 한 구역, 교사만이 관람할 수 있는 ‘페니아의 라이브러리’의 안쪽이었다. 학생이나 일반인에게까지 공개된 공개 장서 중에는 그를 만족시킬만한 책은 없었다. 공중부유의 주문을 사용하여 손이 닫지 않는 책장까지 떠올라, 그는 일사불란하게 책을 찾았다.
그리고, 그 노력은 보답을 받았다. 그는 한권의 책에 쓰인 기록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시조 브리밀이 사용했던 사역마들에 관한 것이 쓰인 고서였다. 그 안에 기록된 한 글귀에 그는 눈길을 빼앗겼다. 그 부분의 내용에 열중하여 읽다가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고서의 한 글귀와 소년의 오른손에 나타난 룬의 스케치를 비교해 보았다. 그는 단음의 신음을 흘렸다. 일순, 집중이 끊겨 몸의 밸런스를 잃었다. 그는 책을 안고 당황하며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달려갔다.
그가 향한 곳은 학원장실이었다.
수업이 모두 끝났다. 종소리가 울리자 학생들이 일제히 식당을 향하기 시작했다. 루이즈 역시 본성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루이즈. 도서관은 어디있지?”
“도서관은 본성 내에 있을거야. 그건 왜?”
“아니, 조금 봐 둘 책이 있다.”
“흐응….”
루이즈는 조금 아니꼽다는 표정을 하며 도서관까지 데려다주었다. 자신은 먼저 식당에 가 있을 테니, 기숙사의 소등시간까지는 들어오라는 말도 덧붙이며. 그다지 이른 시간에 소등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알겠다고 말하고 도서관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도서관 내에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여자였다. 아마 저 사람이 사서겠지. 갈색의 조금 곱슬거리는 머리를 길게 기른, 균형잡힌 몸매의 여성이다. 검은 뿔 테 안경을 쓰고 있다.
“여기, 마법 이론에 관한 서적이 있나?”
일일이 찾는 것보다는 사서에게 묻는 것이 더 빠르겠지, 싶어 사서에게 물었다. 사서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어, 학생은 아니신 것 같은데요…?”
라고 오히려 물었다.
“뭐, 학생은 아니다. 다만 마법 이론에 흥미가 있을 뿐이지.”
“헤에, 그러신가요….”
라고 조금 골똘히 생각하더니,
“으음, 이쪽이에요.”
라며 마법학 란으로 안내했다. 그녀에게 감사 표시를 하고 책장을 살피기 시작했다. 꽤 책이 많다. 어차피 다 읽을 필요도 없고, 이론적인 부분만 알면 될 것이다. 우선은 기본서겠지. 예비 학생을 위한 마법 기초 이론이라는 책을 꺼내려고 하는데, 순간 도서관 깊숙한 곳에서 누군가 뛰쳐나왔다.
“흐아, 핫…!”
쿠당, 하고 보기 좋게 부딪혔다. 좁은 책장 사이에서 뛰다니, 제정신이 아닌건가, 하고 일어나서 몸을 터는데, 누군가 했더니 콜베르 선생이었다.
“이거야, 원…아, 제로 군인가. 실례했네.”
콜베르는 내가 떨어뜨린 마법 기초 이론을 집어서 건네주고는 다시 급히 뛰어갔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걸까. 뭐, 학교 교수의 일이다. 어차피 이쪽이랑은 관계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마법 기초 이론을 들고 열람실로 향했다.
열람실에서는 방금 전의 사서가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쪽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신경쓰지 않고 책을 펼쳤다.
학원장실은 본성의 최상층에 위치한다. 트리스테인 마법학원의 학원장을 맡고 있는 오스만 옹은 새하얀 턱수염과 머리를 흔들며 중후한 느낌의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아서는 지루함을 주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멍하니 있더니 천천히 음, 하는 소리를 하며 서랍을 열어 물담배를 꺼냈다. 그러자, 서류작업을 하던 미스 롱빌이 깃펜을 흔들어 담배를 빼앗았다.
“노인의 즐거움을 뺏다니. 즐거운가? 미스 롱빌.”
“비서로서 당신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제 일입니다. 올드 오스만.”
오스만 옹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이지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미스 롱빌에게 다가갔다. 롱빌의 의자 뒤에 서서 엄숙히 눈을 감고는,
“이런 평화로운 날이 이어질 때에는, 시간을 때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지.”
라고 말한다. 오스만 옹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은 그가 얼마만큼의 세월을 살아왔는지 알 수 없게 한다. 백 년인지, 삼백 년인지.
“올드 오스만.”
미스 롱빌은 양피지에서 깃펜을 떼고는 말헀다.
“무슨 일인가? 미스….”
“한가하다고 해서, 제 엉덩이를 만지는 것은 그만 두시지요.”
롱빌이 깃펜을 휘두르자, 오스만 옹의 손 위로 커다란 얼음덩이 같은 것이 떨어진다. 오스만 옹이 손을 부여잡고 학원장석으로 돌아간다.
“흠흠.”
그리고 깊은 한숨을 쉰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깊은 고뇌섞인 한숨이었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미스 롱….”
“적어도 제 스커트 속에는 없으니 책상 밑으로 쥐를 보내지는 마시지요.”
오스만 옹은 눈을 내리깔며 슬픈 표정을 짓고는 중얼거렸다.
“모트 소그닐….”
미스 롱빌의 책상 속에서 자그마한 생쥐가 나타난다. 오스만 옹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 학원장석의 책상에 올라탄다. 오스만 옹이 주머니에서 땅콩을 꺼내어 쥐의 얼굴 앞에서 흔들자 찍찍 하고 쥐가 기뻐한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너뿐이로구나, 모트 소그닐.”
쥐가 땅콩을 갉는다. 땅콩이 다 사라지자 쥐는 또다시 찍찍 하고 울었다.
“그래 그래. 좀 더 달라고? 좋지. 하지만 그 전에 보고할 게 있지 않느냐.”
찍찍.
“그런가…흰색, 순백인가. 음. 하지만 미스 롱빌은 검은색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미스 롱빌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그래 그래. 롱빌같이 이지적인 성인의 향기가 느껴지는 여성에게는 역시 흰색보다는 검은색이지.”
“올드 오스만.”
“무슨 일인가?”
“또 다시 이런 일이 있다면, 왕실에 보고하도록 하죠.”
“뭣―?! 왕실을 두려워해서야 이 학원의 학원장을 어떻게 맡고 있겠나?!”
올드 오스만이 눈을 뒤집으며 노성을 낸다. 방금 전까지 허무주의적인 한숨을 내쉬던 노인네로는 보이지 않는 기백이다. 아마 이 기백이라면 태■브이나 그렌■간도 조종할 수 있을 것이다.
“속옷 색을 들킨 것 정도로 화내니까 혼기를 놓치는 걸세. 하아―젊음이 돌아오는구나. 으응? 미스….”
올드 오스만이 미스 롱빌의 엉덩이를 당당히 만지작거리자, 미스 롱빌이 표정을 굳혔다.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서서,
“적당히 하십시오.”
하고는, 퍽, 하고, 순식간에 올드 오스만의 하복부를 걷어찼다.
“…미안, 하네. 아프다고. 다시는 안 할게. 진짜로.”
털썩, 하고 수백의 세월을 산 메이지가 쓰러진다. 오오 지친 내 모습. 오오 그것은 인생. 그것은 외로움. 올드 오스만이 머리를 감싸고 쭈그렸지만, 미스 롱빌은 격하게 숨을 내쉬며 오스만 씨의 등을 계속 걷어찼다.
“아얏! 노인을, 으앗, 그런, 식으로, 이봐, 아야야야얏!!”
이런 평화로운 시간에, 순간, 학원장실의 문이 급히 열렸다. 쾅소리를 내며 콜베르 교수가 학원장실 안으로 날아들어온다. 아, 물론, 레비테이션을 쓴 것은 아니다. 단지 날아오를 기세로 뛰어왔을 뿐이다.
“올드 오스만!”
“무슨 일인가?”
마법소녀의 변신보다 빠르게 미스 롱빌이 책상에 앉아 서류정리를 시작하고, 그 0.01 아토 초(as) 뒤에 올드 오스만이 학원장석으로 돌아갔다. 아마 눈으로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크, 큰일입니다!”
“이 세상에 큰 일이 어디있나. 다 그저 그런 일일세.”
“이걸 좀 보십시오!”
콜베르가 수중의 책을 올드 오스만에게 넘기자,
“이건 ‘시조 브리밀의 마법과 사역마, 그리고 그 행보’인가? 또 이런 쉰내 나는 문헌을…그럴 시간이 있으면 학비를 더 올리고도 왕실이나 귀족가에 욕을 들어먹지 않을 방법을 생각하라고. 미스터 콜베르.”
“하지만 이것도 보십시오!”
그와 동시에 콜베르가 제로의 손등에 나타났던 룬 문자의 스케치를 넘겼다. 순간, 오스만 옹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빛을 되찾았다.
“…미스 롱빌, 차를 내어오겠나. 천천히, 깊이 우려오게.”
“…예, 올드 오스만.”
미스 롱빌이 자리를 비우자, 오스만 옹이 입을 열었다.
“자세한 설명을 하게, 미스터 콜베르.”
마법의 원리는 역시나 엘리멘탈 칩의 원리와 같았다. 기본적으로 에네르겐은 아무런 속성도 갖지 않는 순수한 에너지이다. 그 에네르겐의 순환효과에 의해, 공기중의, 혹은 물질의 원자배치를 변환한다. 이 역할을 이 세계에서는 엘리멘탈 칩이 아니라 메이지가 담당한다. 레플리로이드는 체내에 에네르겐을 축적한다. 에네르겐으로 움직이니 당연하다. 이 에네르겐을 방출할 때에, 엘리멘탈 칩을 통과시키면 칩의 영향으로 에네르겐이 순환하여 주변의 공기를 발화, 액화, 냉각, 마찰하여 각각의 효과를 낸다. 그에 비해 이곳의 메이지는 몸에 마력을 거의 축적시키지 않는다. 공기 중의 마력을, 자신의 몸에 축적된 극소량의 마력을 이용해 순환시키는 것이다. 영창과 지팡이의 움직임은 그것을 위한 스위치. 말하자면 메이지 스스로가 엘리멘탈 칩과 같다. ‘닷’이나 ‘라인’, ‘트라이앵글’과 ‘스퀘어’는 동시에 몇 개의 ‘칩’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느냐에 따라 갈리는 듯 싶다. 닷부터 스퀘어까지 한 개부터 네 개.
여기까지 읽으니 이미 기숙사의 소등 시간이 가까워졌다. 책을 꽂아둔 뒤, 사서에게 인사를 하고 기숙사를 향했다.
루이즈의 방 문을 열자 이미 루이즈가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뭘 하다 지금 오는거야? 이 바보가.”
“아무리 고용주라지만 함부로 바보라고 부르지는 말아줬으면 하는데. 책을 읽고 있었을 뿐이다. 아마 앞으로 몇일간은 계속 도서관에 다닐 것 같군.”
“무슨 도서관을 계속 그렇게 다녀? 애초에 너는 마법이랑은 상관이 없지 않아? 그, 전에도 마력을 내뿜었고. 사람 주제에 고위급 환수처럼 굴고 말야.”
“지식의 축적은 중요하지. 특히나 나처럼 이 세계에 초면인 경우에는.”
“하아…?”
루이즈는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알았다구. 수업은 굳이 참관하지 않아도 좋아. 속옷은 침대 아래에 뒀으니 내일 아침에 빨아.”
“…알겠다.”
도서관으로 출퇴근을 시작한지 삼일 즈음이 지났다. 오늘도 도서관으로 나서려는데 루이즈가 손짓을 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봤다.
“오늘은 허무의 요일이니까 시내로 나갈거야. 따라와.”
“…무슨 일인가?”
“쇼핑.”
흐음. 그런가. 확실히 기숙사 생활을 하려면 소모품은 시내에서 사 와야 할 것이다. 어쩐지 오늘은 루이즈가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혀달라고 하더니. 뭐, 사복이라고 해서 굳이 다를 것도 없다. 블라우스와 프리츠 스커트. 스커트가 회색이 아니고, 장식적인 브로치나 로자리오를 몇 개 더 달 뿐이다.
“알겠다. 채비를 하지.”
구석에 놓아두었던 버스터 샷과 제트 세이버 두 자루를 꺼내 정비했다. 몇일 쓰지 않았지만 어딘가 고장난 구석은 없다.
“알겠어? 오늘은 네 옷이랑 무기를 살거야. 명색이 귀족의 사역마인데 그런 이상한 옷을 입게 하면 내가 욕을 먹잖아. 그리고, 인간인 주제에 메이지를 지키려면 무기는 있어야 할 테니까.”
“…아니, 무기라면 이미….”
“아아, 정말, 시끄러! 주인이 사준다면 적당히 예 예, 하고 받아들이라구!”
“―알겠다. 수용하지.”
솔직히 말하자면 이 시대의 무구―물질병기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긍정하자 루이즈는 학원 공용의 말을 두 마리 빌려왔다. 도보로는 얼마나 걸릴 지 알 수조차 없다고 하니, 이동수단이 있다면 편하겠지.
학원 공용의 말답게 말은 온순했다. 처음 다루는 것인데도 달리게 할 수 있을 정도다. 이거라면 꽤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자아, 그럼 빨리 가자구. 도로변을 따라 동쪽이야.”
“알겠다.”
마편을 내리치자 말은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리드미컬하게 얼굴을 때렸다. 승마에 대한 지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직접 하게 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긴, 이런 세계에 소환된 이상 어느정도는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말은 계속해서 달렸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시내에 도착한 것 같다.
“우선은 무기. 네가 쓸 거니까 네가 고르게 하겠지만, 날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하면 절대 안돼. 알겠어?”
“…뭐어, 나는 지금 가진 무구로도 충분하지만.”
이런 소리를 하며 무기점의 문을 열었다. 점내는 한낮인데도 불과하고 어두웠다. 이건 곤란하다. 무구를 썩혀두고 있다. 더군다나 이렇게나 지저분해서야, 뭐가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이거, 귀족 아가씨. 저희는 제대로 장사를 하는 가게입니다만….”
“손님이야. 내 하인이 쓸 무기를 사러 온 거야.”
점 내를 둘러보았다. 대체적으로 백병전용의 무구가 많다. 어차피 백병전이 성격에도 맞으니 상관은 없다.
양손용의 대검을 쥐어들었다. 순간 왼손의 룬이 빛나며 대량의 정보가 메모리로 흘러들어온다…!
“핫…?!”
무구의 밸런스 분배, 길이, 재질 등. 알 수 있는 모든 정보가 동시다발적으로 왼손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아쉽게도 질량병기인 대검을 사용할 만큼 여유있지는 않다. 내 검술은 속검이다. 같은 이유로 돌격창도 제외.
“어때, 제로? 괜찮은 건 있어?”
“…아니, 전혀. 무기로서 괜찮은 것은 몇 개 있지만, 나에게 맞는 것은 없다.”
순간, 점주의 얼굴빛이 변한다. 그 도전, 받아들이겠다―고 외치는 듯 하다.
“잘도 말하시는군요. 나으리가 얼마나 무기를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가게 비장의 물건을 보여드리지요.”
“…수용하지.”
점주는 가게의 안쪽에서 번쩍거리는 무구들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장검에서 레이피어 정도의 무기들이다. 역시나 잡는 순간 왼손으로부터 메모리로 데이터가 흘러나온다. 사실 굳이 그 정보가 없어도 판단은 가능할 정도로 단순한 것들 뿐으로, 보석을 박아 반짝거리는 것들 뿐, 무구로서의 밸런스는 엉망이다. 쓰레기로군, 하고 말하려는 순간.
[…재미있구만. 보는 눈이 있어보이는데?]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동의 칼집으로 감싸인 칼이, 들썩들썩하고 있다. 설마 무구가 말을 한 건가.
“이녀석, 또 말을 하다니…!”
“…흥미 있다. 무구가 말을 하다니. 재미있군.”
“인텔리전스 소드.”
루이즈가 말을 낚아채듯 대답한다. 인텔리전스 소드? 지능을 가진 검이라는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병기란 쥐고 휘두를 수 있어야 한다. 자기판단능력을 가진 병기는 위험하다. 레플리로이드가 이레귤러화 됐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뭐, 칼이 자기판단능력을 가져봐야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만.
왼손을 들어 녀석을 잡았다. 손등의 룬이 빛났다. 역시나 머릿속으로 롱 소드 검술과 손에 든 병기에 대한 정보가 흘러들어왔다. 헌데, 이것은…?!
“…하아?”
[이거야…네놈, ‘사용자’인가?]
“사용자라니….”
[마음에 들었다. 나를 사가라.]
왠지 주객이 전도된 느낌만 제외하면 마음에 드는 선택지다. 지능을 가진 무기의 효용성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마침 이것은 장검으로서 딱 좋은 밸런스를 가졌다. 아마, 정말로 실전을 위해 만들어진, 그런 심플한 무기겠지.
“좋다. 루이즈, 이녀석이다.”
“하아? 좀더 좋은 디자인의 무기가 많잖아.”
“저것들은 전부 쓰레기다. 그저 모르는 녀석들이 예장용으로 차는 것에 불과해.”
“흐응…그래? 뭐, 네가 쓸 무기니까, 아무거나 고르진 않았겠지.”
그렇게 말하며 루이즈는 지갑에서 대금을 치뤘다.
“이거야…이제서야 그놈이 팔리는 군요. 델 브링거. 뭐어, 전설시대부터 존재했다는 마검이라고는 합니다만…진짜인지. 입이 더러워서 인텔리전스 소드인데도 잘 안 팔려서 말이죠.”
“그런가. 하긴, 병기가 주인에게 반항해서야 의미가 없겠지.”
[날 보통의 병기로 보는건가? 이번 대의 사용자는 꽤 건방지구만.]
“…뭐, 좋은가. 주인장, 연습장은 있나?”
“따라오시죠. 뒷뜰이 시검장입니다.”
점주를 따라 뒷문으로 나가자, 그곳은 넓은 공터였다. 아니, 그다지 넓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시내에서, 이정도 공간이 가게 뒤편에 있다면 꽤나 괜찮다.
등신대의 볏짚이 몇 개 놓여있다. 통나무도 있다. 모두들 여러 번 베인 듯, 흠집이 나 있다. 황동빛 칼집에서 녀석을 빼어들었다.
제로가 검을 빼어들었다. 순간, 공기가 변했다.
제로 주위로 검붉은 기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은 검붉다.
제로가 검을 휘두르자, 바람이 불었다.
제로가 자세를 취하자, 붉은 바람이 불었다.
제로는 발을 내딛고 춤췄다.
왼발을 내딛으며 수평으로 발검, 직후 다시 왼발을 당기며 검을 어깨로 당겼다. 우로 크게 휘둘러 수평으로 벤 직후, 반회전하며 밑에서 위로 쳐올린다.
오른발을 내딛으며 수직으로 베어내린 뒤 좌향으로 반회전하며 검을 오른어깨로 당겨들고 동시에 왼발을 들어올려 앞으로 내딛었다.
좌를 향하여 크게 베어낸 뒤 다시 좌향으로 반회전하여 검을 오른어깨로 당겨든다. 그대로 우회전하며 크게 휘둘러 자세를 낮추며 검날을 몸까지 당겼다가 왼발을 내딛으며 왼 어깨에서 오른 허리까지 베어냈다.
동시에 다시 우회전하며 검을 왼어깨로 당겨들고 자세를 가다듬은 뒤 검날을 검집에 마찰시키며 착검한다.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레.
아아―――――――――――솔직히 인정하자.
그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멋지군요.”
점주가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쳤다.
“내 생에 이런 검무를 보게 될 줄은…칼 값을 받은 게 송구스러울 정도입니다.”
“마음에 드는 검이었다.”
빈 말은 아니다. 질량병기는 손에 들었을 때의 밸런스가 가장 중요하다. 그 점에서 이 델 브링거라는 검은 한 점의 오차도 없다. 휘두를 때의 감각 역시 훌륭하다.
“그럼, 수고하도록.”
점주에게 인사를 하고, 얼빠진 얼굴을 한 루이즈를 챙겨 무기점 밖으로 나왔다. 시끄럽게 떠들던 델 브링거도 조용해졌다.
의상품점에 들려 셔츠와 바지를 몇 벌 샀고 왠지 파티용의 예장용 의복도 몇 벌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 입게 될 일은 없겠지만, 일단은 받아두기로 했다. 성문에 묶어두었던 말을 되찾아 학원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루이즈는 피곤했는지 금새 잠들었고, 어두워진 하늘엔 적막만이 감돌았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델 브링거가 그 몸을 드러냈다.
[너, 인간이 아닌 것 같더구만.]
“칼 주제에 거기까지 알아챘나.”
[움직임이 인간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해야할까…비정상적으로 규격화되어있다고 해야할까.]
“…말만 하는 모양은 아닌 것 같군.”
[괜찮겠지. 나는 ‘사용자’를 만나면 그만일 뿐이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파트너.]
“파트너, 인가.”
꽤나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델 브링거마저 입을 다물었다. 어둠이 방 안을 침식하고, 달빛만이 유일한 광원이 되었다. 커다란 두 달은, 푸르고 붉은 빛을 은은히 비췄다.
“…푸르고, 붉은가. 마치 그 녀석과 나 같군..”
감상에 젖어 있는 모습이 마치 그 녀석을 닮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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